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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 오늘 밤, 소설의 도입부에 '극적인 사건'이 필요한 이유

하프피프티 2021. 1. 29. 04:55

 

오늘 밤, 소설의 도입부에 '극적인 사건'이 필요한 이유

 

 

 

 소설의 도입부

 

 발단 - 전개 - 위기, 절정- 결말으로 구성되는 플롯의 구조에서 가장 첫 단계인 발단에는 "초 목표"가 제시됩니다.
 제가 예전에 보았던 시나리오 작법과 관련된 글에 따르면 주인공에게 있어 '최악의 사건'이 제시되고, 그 '최악의 사건'을 '최선'으로 바꾸기 위한 선택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쥔공이 해결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 사건이 나와줘야 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럼 발단에서의 가장 첫 단계에서는 어떤 내용이 나와줘야 할까요?
 작품의 실질적인 첫 시작지점, 도입부인 이 부분에는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를 소개하는 내용이 와야 한다고 합니다. 작품이 시작되면 초반에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를 하고 넘어가야, 독자들도 그 인물에 감정이입을 해서 계속 작품을 따라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도입부에 집어넣을, 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을 만들어봤습니다.
 그리고 현실은 시궁차 아니,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갭이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분명히 이상을 쫓아, 교본에 따라 열심히 썼는데 현실의 결과물은 되게 실망스러웠습니다. 머리를 쥐어짜서 적었음에도 이 밋밋함은 무엇일까요. 지루지루합니다. 소설이든 각본이든 잘 쓰인 작품을 보면, 이런 밍밍함은 찾아볼 수 없는데, 말입니다.

 

 

 뭐, 그것이 대박을 터뜨린 히트작들과 이제 갓 펜을 든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와의 실력차이 중 하나이겠습니다만, 현실과 이상의 갭 사이에서 머리를 꼬던 저는 얼마 전에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극적인 사건

 

 지난 주인가요. 케이블 TV의 영화 전문채널에서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영화를 해 주는 것을 봤습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수퍼맨처럼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신체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아니, 능가하는 것을 넘어서 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힘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지 않을까. 뭐, 당연하게도 약점은 존재하지만요(물에서만큼은 힘을 못씁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으로는 그냥 평범한 중년남성입니다. 아내가 있고, 어린 아들이 한 명 있으며, 미식축구장 경비원으로 하루하루 삶에 찌들어 살아가죠. 지극히 평범한 세상 속에 이질적인 체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은 가족들과도 거리를 뒀고, 그 결과 마누라와도 사이가 소원해져서 부부가 각방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작품의 주인공의 간략한 특징.

그리고 영화는 시작 부분에 주인공이 기차를 타고 뉴욕에서 필라델피아로 돌아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삶의 의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기차에 타고 있는데 옆자리에 젊은 여자가 타자, 결혼반지를 빼 주는 패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좌석 앞에 꽂힌 잡지를 이용해 바로 수작 걸기.

 

 얼마 뒤, 이 열차는 대규모의 탈선사고가 일어나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합니다.
 정확히는 주인공과 다른 한 명은 숨이 붙은 상태로 병원으로 호송되지만, 두개골이 깨지고 좌반신이 으깨진 다른 한 명의 승객은 주인공의 옆에서 결국 사망하죠. 그리고 주인공은 긁힌 상처 하나 없이, 심지어는 옷조차도 찢어진 곳이 없이 멀쩡한 모습을 자기 발로 걸어서 퇴원을 합니다. 의료진은 물론, 병원에 모인 사고 피해자 유족들의 시선을 뚫고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나가는 그 기분은 어땠을까요.

 

 이 사고 뒤, 주인공에게는 자꾸 귀찮게 하는 사람 한 명이 생겨났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주인공에게 크게 다친 적이 있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그런 적이 없을 거라고 거의 단정을 하지요.

 여기까지 보자 삥~ 뭔가 신호가 왔습니다.
 그래. 주인공의 특징을 보여주는 데에서 내게 부족했던 그것은 바로.

 

‘임팩트!!!’

 

 이 작품에서는 기차 탈선 사고라는 '극적인 사건'을 이용해 일단 보는 사람을 붙잡아 놓는 동시에 주인공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 조성된 배경에서는 주인공의 배경, 상황 등을 잘 녹여냈습니다. 경비원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중년 남성임. 결혼반지를 쉽게 빼버릴 정도로 마누라와는 관계가 좋지 않음 등등.

그런 점에서 초반에 인물을 소개한다는 것은, 단순히 불라불라 쥔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주인공에 대해 소개를 하려면, 일단 독자나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끔 '박력넘치고', '극적'으로 '사건'을 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소설의 백미인 소설의첫 문장’도  도입부의 ‘사건’에서 나오는지도

 

 그런데 소설의 첫 문장, 첫 문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첫 문장, 늦어도 첫 문단에서 독자를 사로잡을 뭔가가 있어야 자꾸만 이탈하려고 하는 독자를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죠. 때문에 첫 문장이 유명한 작품들은 계속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 “안나 카레리나”. “모비딕”. “두 도시 이야기” 등등이 대표적이죠.

<<오만과 편견>>
“자산 깨나 있는 독신남들이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인 진리이다.”

<<안나 카레리나>>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이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

<<두 도시 이야기>>
“그것은 최고의 시기이자 최악의 시기였다. 지혜의 시기이기도 했고, 바보들의 시대이기도 했으며 믿음의 시대이자 불신의 시대이기도 했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고, 아무 것도 갖고 있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향하고 있었고, 또 반대로 가고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의 첫 머리를 읽어보면 첫 문장에서 각 작품들의 전체 분위기 혹은 전체적인 주제를 이미 제시하고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저 첫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반해서 저도 한때는 이 첫 문장 혹은 첫 문단에 장황하게 전체 얘기를 다 포괄해 보려고 버둥버둥거렸죠.

 그렇지만, 도입부에 쓰이는 '극적인 사건'에 대해 알게 되자, 반드시 꼭 첫 문장(혹은 첫 문단)이 작품 전체의 내용을 관통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자고로 말에는 이유가 있는 법.
 오만과 편견에서 작가가 부르주아 계급의 사회적 관습을 첫타로 꺼낸 것도.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리나에서 각 가정이 불행한 이유는 다양하다고 말한 것도.
 찰스 디킨즈가 두 도시 이야기에서 굳이 양면적인 시대상을 늘어놓은 것도.

 

 모두 뭔가 구체적인 '사건'을 이야기하기 위한 밑밥이 아닐까.
 저 말들로 드러내고자 하는 구체적인 방향, 내용이 있기 때문에 저렇게 쓴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 이건 이 대작가님들에게 물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제 뇌피셜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저는 저 문장들로 표현될 특정한 어떤 내용이 있어야, 첫 샆도 뜨고, 계속해서 이야기도 이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 제가 했던 것처럼 무작정, 작품 전체의 내용을 꿰뚫는 문장을 쓰겠다~!!!라고 씩씩거린다면 , 어쩌면 결말부터 시작하는 구조를 취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결론은 결말 적어도 절정 이후에나 나올 테니까.

 

 그런데 플롯상으로도 작품의 재미를 위해 도입부에는 '극적인 사건'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첫 문장을 잘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뚜렷한 내용 = 극적인 사건은 꼭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밤 저의 소설에 '극적인 사건'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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