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소설쓰기와 자작소설

시퀀스를 나눈다는 그 의미 (개정판)

하프피프티 2021. 11. 11. 22:54

 

 시퀀스를 나눈다는 그 의미 (개정판) 

시퀀스



 

1. 시퀀스의 정의에 대해 




 시퀀스란 소설을 이루는 사건 하나하나이다.
 그 사건들 자체는 자잘하게 분리되어야 하며, 
사건 하나하나에는 장소, 시간, 인물의 행동 등 모든 것에 구체성을 부여되어야 한다. 


 

 

 


  
 벌써 6년 전일입니다. 소설을 쓸 때 시퀀스를 나누고 트리트먼트를 작성하는 버릇을 들이면 글 쓰는 것이 아주 수월해질 것이라는 조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퀀스가 무엇인지, 시퀀스를 나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글 쓰는 스타일이 다르다고는 이유로, 시퀀스와 트리트먼트를 등한시했습니다. 이른바 자기합리화. 그림을 못 그리는 왕초보들이 그림을 개떡 같이 그려놓고는 미술계의 거장인 피카소도 이런 식으로 그린다고 우기는 것과 같은 과입니다.

 

됐거든요.

 


그랬는데, 알고 보니 저는 그 말에 해당되는 타입인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을 붙잡고 있던 제 소설의 밑바탕을 다 완성하고 드디어 본문을 작성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캐릭터도 (그냥그냥) 설정했고, 스토리도 진행할 이야기를 다 정해놓았는데, 정작 키보드에 손만 얹으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습니다. 작성해 둔 내용을 토대로 순서대로 쓰면서 살만 붙여나가면 될 것 같은데, 머리와 손이 따로 놉니다. 머릿속으로 상상했을 때에는 꽤 그럴듯한 그림이었는데, 정작 글로 옮기니 영 밋밋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괜한 설정만 몇 번이고 엎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설정이 완전치 않았다고 생각해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보았지요. 현실의 인물이었다면 팔방미인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제 소설 (혹은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 이리 살펴보고, 저리 살펴본 결과, 도통 '본문'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퀀스를 제대로 나눠두지 않았기 때문.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겠습니다만, 그 사실이 교착상태에 꽤 큰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시퀀스란,  장소, 행동, 시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몇 개의 장면이 모여서 이루어진 독립적인 구성단위입니다.


 
 그렇게만 들으면, 사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랬는데, 어제 <공공의 적> 시나리오와 시나리오 완성 직전의 시놉시스 = 트리트먼트를 동시에 열어놓고 내용과 구성을 비교해 보니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제 식대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짜놓은 대략적인 사건 하나>, 쯤 되시겠습니다. 
 시작부분의 사건. 전개 부분에 들어간 사건. 절정 부분에 넣을 사건. 그리고 결말을 꾸며줄 사건. 다른 말로는 상황이라고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 하나, 하나.

 

도넛 하나하나가 사건 하나하나 즉 시퀀스

 


 그 연장선에서 시퀀스를 나눈다는 것은 작품를 진행하기 위한 상황을 하나, 하나 생각해 둔다는 것.


 그러나, 시퀀스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2. 내 것은 시퀀스가 아니라, 줄거리.

 

 

 


 오늘 오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그 글에서 줄거리, 시퀀스, 플롯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 글을 보고 아주 중요한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제가 제 소설을 쓰려고 생각해 둔 몇 개의 큼직큼직한 사건들은 시퀀스가 아니다.
 그것은, 줄거리이다 (혹은 시놉시스).

 

 

 = 줄거리는 뼈다구

 


 시퀀스는, 내가 적어둔 그 모호하고 일반적인 내용에 보다 구체적인 장소, 구체적인 상황, 인물들의 구체적인 행동 등의 내용을 덧붙인 것이다.

 

 

=

시퀀스는 뼈에 살이 붙은 고깃덩어리



 제가 인터넷에서 본 글은 선녀와 나뭇꾼을 예시로, 줄거리를 설명하고, 그 줄거리를 기반으로 시퀀스를 나누는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을 쓴 분은 선녀와 나뭇꾼의 줄거리를 매우 상세하게 적어놓으셨더군요. 그 상세하게 나눠놓은 내용에서도, 시퀀스 나누기에 들어가자 인물들의 행동이 더욱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줄거리
- 선녀와 나뭇꾼은 혼인을 했습니다.

 


 시퀀스 
- 선녀는 나뭇꾼을 따라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나뭇꾼과 함께 지내며 점차 나뭇꾼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두 사람은 혼례를 치뤘습니다. 일단 결혼하고 나니 나뭇꾼은 무서울 게 없어졌습니다. 매일 술을 마시며 선녀에게 행패를 부렸습니(잠깐!).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선녀의 행동이 더욱 구체적이 되었고, 결혼한 뒤의 모습도 더 자세해졌습니다.



 그런데 전 시퀀스를 나눈다고 해 놓은 것은 정말 사건의 핵심적인 얘기를 적어놓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말하자면, 줄거리를 나열해둔 것뿐이었습니다. 아니면, 본문 쓰기 전에 적어두는 시놉시스 수준.
 그러다 보니, 자세한 윤곽이 제대로 잡히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소설의 도입부를 쓸 때 쓸데없이 배경이나 풍경을 묘사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등장인물의 행동부터 보여주라는 것이지요. 그 말에 따라 묘사와 설명을 안 하려다보니, 주인공이 있는 장소, 등장인물이 해야 할 행동, 이곳에 있는 이유 등 많은 중요한 정보도 똑같이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말았습니다. 모두 존재해야 할 중요한 내용도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블로그를 보니, 2020년 1월 무렵에 시퀀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놓았더군요.
 이따금 보면 구글에서 검색도 되는 것 같던데, 그 내용은 창피할 따름입니다. 시퀀스와는 다른 엉뚱한 이야기를 해놓았더군요. 뭐, 잘 몰라서 그런 것이겠습니다만.



 이 글도 나중에 보면, 또 "무슨 헛소리를 이렇게 진지하게 늘어놨냐." 싶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은 오늘의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본문을 쓰겠다고 설치지 말고, 일단 시퀀스부터 나눠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본문에 들어가기보다는 본문에 가까운 시놉 = 트리트먼트를 작성해보고요.



 그래, 최소한 아점을 먹을 거라면,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어제 먹고 남은 청국장에 밥을 말아 먹을 것인지, 우아하게 서양식 브런치를 즐길 것인지 정도는 확정해 줘야 하지 않겠어? 브런치를 하는 장소가 무슨 호텔 레스토랑인지, 무슨 길의 브런치로 유명한 카페인지까지 밝히진 않더라도 말이지.



 참고로.
 플롯은 이렇게 정리한 줄거리나 시퀀스를 내 의도대로 이 위치, 저 위치에 갖다놓아 전체적인 구성을 해 주는 것.
 줄거리에서 결말은 가장 끝에 나오지만, 플롯에서는 가장 앞에 나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헐. 스토리를 보다 자세하게 구상하는 것이 플롯을 짜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글의 전체 레이아웃을 짜는 거였네요. 그 동안 엄청난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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