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소설쓰기와 자작소설

[소설 쓰기] 인물을 따라가는 사건

하프피프티 2020. 12. 26. 22:12

인물을 따라가는 사건

인물을 따라가면 이야기는 저절로 전개된다

 굳이 소설만이 아니라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에게서도 종종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대로 놔두면 저절로 이야기는 저절로 굴러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전 그 말에 별로 공감이 가질 않았습니다.
 우선 전 인물 중심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이야기의 전개에 필요하거나, 내가 그리고 싶은 사건과 장면은 미리 정해져 있죠. 그런데 인물들이 하고 싶은 내버려두면 삼천포로 빠집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전혀 다른 곳에서, 완전 다른 얘기를 만들어내고 있더군요. 그래서 되도록 모든 상황을 미리 가정해두고 인물들을 거기에 끼워넣습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제대로 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런데 어제, 그제, 인물이 하고 싶은 놔두면 이야기가 저절로 전개된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았습니다.

 

 

 남을 돌봐주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지랖이 그 행동의 동기가 될 수 있다

 며칠 전에 이웃으로 걸어놓은 블로그에서 소설의 인물조형에 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내용 자체는 예전에 다른 어디에서인가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는데, 그 글에서 시작해 징검다리를 타듯이 넘어가다보니 어떤 작법서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트라우마 사전>>이라는 책과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이라는 책이었는데요. 전자는 등장인물들이 가질 수 있는 정신적인 상처를 모아서 정리해 놓은 것이고, 후자는 인물이 가질 수 있는 성격을 정리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양쪽 모두 트라우마와 성격을 종류별로 나누고, 특징 및 행동성향까지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작품구성 할 때 바로 요소요소 뽑아다가 집어넣을 수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죠.

 오오오. 원론적인 내용을 내가 이해하고 스스로 해석해 정리할 필요가 없다! 그냥 거기 나와 있는 내용 중 꼴리는(?) 것을 골라 사용하면 된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간편함에 반해(……) 바로 주문을 했더랬지요.
 또, <트라우마 사전>의 경우는 배송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전자북으로 다운받을 수 있기에 전자북으로 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읽어봤습니다. 사전이라는 제목 답게, 전체적인 구조는 파편화된 정보를 모아놓은 것이라 본문 자체는 제가 알고 싶은 부분만 골라서 읽어보면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 제가 쓰려고 하는 작품의 인물들의 특징들을 정리하고, 인물들의 그 특성에 기반해 구체적인 장면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웬걸. 가장 어려운 고비 중 하나였던 발단부에 하나의 빛이 보였습니다. 발단부에 등장인물들이 첫 할 걸음을 떼게 하는 그 동기를 아무리 해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는데, 캐릭터의 트라우마를 중심으로 인물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하다보니 실타래가 풀리듯이 어떤 내용들이 슈루룩 떠오르더군요.

 어릴 적 트라우마로 남을 잘 돌보게 된 인물.
 그 특유의 오지랖 때문에 사건의 장에 고개를 들이밀게 된다.
 쉽게 말하면 어? 곤란에 처했어? 내가 도와 주께! 같은 거.

 또, 지금까지는 그 오지랖을 부릴 상황에 처해가 되는 이유라고 할까, 동기도 마땅치가 않았습니다.
 짱돌을 굴리고 굴려서 어찌어찌 생각해 놓은 것이 있긴 한데, 너무 작위적이고 별 감흥도 없었습니다. 내 소설에 들어갈 내용인데도 내가 생각해도 재미가 없는 건 기본이고,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나? 라는 당위성을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는 것은 옵션이었습니다.

 그런데 캐릭터의 성격이나 특성에서부터 출발을 하니까, 저절로 답안이 될 만한 내용이 도출되더군요.

 성격이 A하니까 B라는 행동을 한다.
 A라는 문제가 있어서 B라는 행동을 한다.

인물이 움직이는 대로 놔두다보니 저절로 이야기가 굴러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걸 말하는 모양입니다.
 지금껏 인물을 하고 싶은 놔두니 이야기가 안드로메다로 가 버렸던 이유는, 해당 상황을 캐릭터의 성격에 맞게 반응시킨 것이 아니라 인물과 상황이 따로 놀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줄 실타래가 조금 풀린 것 같긴 하지만, 공교롭게도 다른 일을 하다가 퍼뜩 떠오른 내용인지라 좀 더 궁리는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뭣보다, <<트라우마 사전>>이랑 같이 산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종이책이라 배송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고 말이죠. <<캐릭터 만들기의 모든 것>>은 같은 상황이라도 성격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는지도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 '행동패턴'과 '장면'을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샀는데 (즉, 문제는 정답만 노리고), 지금은 성격별 특징과 특성을 좀 더 알아보고 싶습니다. 인물의 성격이나 갖고 있는 특성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한다면, 인물을 형성하는 요소가 늘어날수록 그것에 맞춰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지도 모르니까요.

요즘 글이 안 쓰여져서 초조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간만에 글쓰는 게 재미있어졌습니다. 웃흐흥. 좋다. 그런데, 정작 쓸 시간은 부족하다. 일도 해야 하고, 블로그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니까. 꽥. 하루가 72시간일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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