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소설쓰기와 자작소설

소설 쓰는 방법 : 창작의 스타일, 플로터(Plotter)와 판처(pantser)

하프피프티 2020. 12. 11. 02:48

소설 쓰는 방법 : 창작의 스타일, 
플로터(Plotter)와 판처(pantser)

plotter (수첩)과 pantser (노트북)

 

 - 당신은 어느 쪽인가?

 글쓰기라고 하면 왠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흔히 대박 친 소설이나 시나리오가 떠오르고, 그런 상업성을 배제한다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비유로 아름답게 정제해 놓은 시와, 매우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수필이 그 자리를 대신하죠.
 그렇지만 글쓰기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그날 하루 있던 일을 적어보는 일기도 글쓰기에 해당되고, 대학생의 레포트 (석박사 학위논문은 최상급 글쓰기에 들어가므로 논외)도 그러하며, 당장 제가 이렇게 블로그에 싸지르고 있는 포스팅도, 글쓰기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쓸 때 여러분은 어떻게 쓰시나요?
 일단 무슨 내용을 쓸지 정리를 하고 작업에 들어가시나요? 아니면, 나는 실전파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현하시나요?
 계획과 직감. 당신의 글쓰기를 이끄는 요소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퀴이즈가 있습니다.

1. 여행갈 때에는 늘 가이드북을 미리 확인한다
2. 개인책장은 논리적으로 정리돼 있다
3. 장보기 전에 목록을 만든다
4. 길을 잃으면 당황한다
5. 특정한 식당에 갈 때 인터넷으로 메뉴를 확인한다
6. 양말 선반은 색깔별로 정리돼 있다
7.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정해 전날 준비해둔다
8. 늘 경로찾기를 한다. 여행 갈 때에는 물론, 집 마당을 벗어나는 정도로도.
9. 내 옷장 속의 시트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것) 칼같이 접혀 있다
10. 내 차 안에는 옷, 책, 운동장비, 패스트푸드 포장지, 찌그러진 음료수 캔 다 마신 커피컵 등이 자유롭게 널부러져있다.

 문장이 좀 어색한 건 제 영어해석실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니 양해해 주시고, 대충 핵심만 (알아서) 파악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 퀴즈는 자신의 창작 스타일이 Plotter(플로터)인지 pantser(판처?)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게 해 주는 퀴즈입니다.

 그렇다면, Plotter(플로터)는 뭐고 pantser(판처?)는 뭐일까요?

- 창작 스타일

1. Plotter(플로터)


집필을 할 때 - 제 경우에는 소설이므로, 소설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소설을 쓸 때 플롯을 계획적으로 작성하는 스타일을 말합니다. 작품 속에 들어갈 모든 내용을 미리 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작가는 자기 작품의 큰 줄기가 되는 메인 플롯은 물론, 완전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다 꿰고 있습니다.

 때문에 늘 목적지 (즉, 결말)까지 문제없이 도달하고, 중간에 다른 길로 빠지지 않습니다. 집필되는 내용에 뜻밖의 내용이 끼어들어 영향을 미칠 여지도 많지 않습니다.  실제 집필을 시작하기 전의 사전작업이 굉장히 오래 걸리지만, 일단 작업에 들어가면 집필은 금방 끝이 나죠.

 그렇지만, 이야기가 미리 정해져 있는 탓에  아웃라인을 바꾸려고 하면 인물이 통째로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새로운 걸 쓰는 것보다 더 벅찬 상황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작품들의 특성상, 무엇 하나를 바꾸게 되면 그 변화 하나에 각 장들이 모조리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안정적이되, 융통성과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 pantser(판처?)

 직감에 따라 원고를 작성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이야기와 캐릭터가 자기 멋대로 뻗어나가는 것을 허용합니다. 이야기를 미리 정해놓지 않기 때문에 사전작업 시간은 짧으며, 같은 이유에서 의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개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요.

 그러나 이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써 나가다가 글이 막히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보통은 쓰던 글을 아직 마무리 짓지도 못했는데, 다른 글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사전 작업이 적은 대신에, 그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을 집필 단계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글을 쓰는 기간은 길어집니다.

 위 퀴즈에서 예가 6개 이상이면 계획적인 plotter. 4개 이하라면 내일의 나를 믿는 pantser에 들어갑니다.
 혹시나 피프피 피프피라면, 두 가지 성향이 다 있는 plantser입니다. 실제로 계획성 있는 plotter의 장점과 직감에 따라 자유롭게 쓰는 pantser의 장점을 모두 다 이용하는 경우는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 나는 pantser(판처?) 이상 plantser 이하

 저 같은 경우는 퀴즈에서 확실하게 예라는 대답이 나온 것이 두 개, 아니라는 대답이 나온 것이 네 개, 애매모호가 네 개였습니다. 확실하게 나온 답만으로 성향을 따지면 pantser. 애매모호를 비교적 가까운 성향으로 쓰러뜨려서 억지로 선을 그으면 5대5가 되어 plantser가 됩니다.

 생각해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부담없이 글을 쓸 때나 수업시간에 갑자기 작문을 할 때에는 머릿속에 계획 같은 것을 세우지 않습니다.
 첫 문장 혹은 첫 단어를 어떻게 운을 뗄지를 생각한 뒤, 그 뒤는 의식이 가는 대로, 손가락이 가는 대로 씁니다. 지금은 블로그 글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주제, 하고 싶은 얘기 두어 문장 정도만 빼고는 글쓰기 창을 똬 열고 거기서부터 작성을 해 나갑니다. 물론 다 쓰고 난 뒤 손을 봐 주지만요(초고부터 완벽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천재  혹은 용자입니다).

 또, 얼마 전에 소설의 플롯 짜는 법을 시나리오 작법에서 배우기도 했습니다.
 작법서에 써 있는 내용이나 교과서에 기술돼 있는 내용만으로는 도저히 제 작품에 적용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글을 보고는 깨달음을 얻었더랬지요. 특히 발단부와 전개부를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게 되어, 그날은 환희에 몸을 떨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기승전결 네 줄의 내용에서 진전이 없던 작품을 드디어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해 프리덤을 외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지난 9월 중순의 일입니다.

 그랬는데.
 그때로부터 3개월이 다 되어가도록 아직도 제 파일창은 썰렁합니다. 플롯 짜기에서 딱 가로막혀 버렸네요.
 이미 기승전결에 따른 내용은 생각해 두었기 때문에, 각 내용의 상세한 장면
(예를 든다면, 범인을 추적한다 → 장면 1. 희생자가 향한 곳이 OO동이고, 범인이 OO차종을 몬다는 정보를 얻는 장면. → 장면 2. OO동으로 이동하는 장면 → 장면 3. OO 차종을 찾는 장면)을 생각해야 하는데, 지금 거기서 더 나아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마땅한 장면, 상황이 안 떠오르는 겁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생각해서 적어놓으면 너무 작위적인 것 같고 말이죠. 이야기가 매끄럽게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대 토막쳐놓은 것마냥 아니면 비엔나 소시지처럼 중간중간에 돌돌돌 말아준 것처럼 뚝뚝 끊어지는 느낌입니다. 심지어는! 그대로 나아가면, 왠지 제가 생각했던 내용과 분위기가 달라지더군요.
 그래서 제가 원하던 분위기로 가기 위해 내용을 좀 고치려면, 등장인물부터 시작해 대대적으로 설정을 다 뜯어고쳐야 하는 대규모 공사로 이어지고요. 그 덕분에 지금까지 전체 설정이 한 세 번은 바뀌었을 겁니다.

 이걸 보면, 전 세세한 내용까지 다 미리 설정해 두는 plotter는 절대로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지금까지 습작을 해 오던 때를 돌이켜 보면, 대부분
지금 내가 쓰는 내용, 상황, 설정에 맞춰 다음에 쓸 내용이 뾰옹~ 생각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와, 이런 내용을 넣으면 좋겠네~(난 천잰가 봐~!)."라며 혼자 좋아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소설을 쓰는 건 어릴 때부터 품어왔던 꿈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평생 직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남에게 내 글을 돈 받고 보여줄 수 있도록 일단 형식이라도 제대로 갖춘 작품을 쓰고 싶
어서 용을 쓰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플롯의 벽에 가로막혀 헐떡거리고 있는데요.

 그러고 보면, 제가 가진 작법서에서도 플롯을 구성하는 단계에서 작가들의 성향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저자 자신은 plotter이지만, 실제 유명 작가들 중에는 미리 내용을 생각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나아가듯이 조금씩 조금씩 더듬어가며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성향 차이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낫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차이일 뿐이라고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자신이 성과를 내는데 더 베스트인가, 어느 쪽 방법이 더 나한테 잘 맞는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철저한 계획 아래 글을 쓰는 그런 타입이 못 된다고 한다면, 저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글을 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플롯을 짜고 시퀀스를 나누고 하는 그런 작업을 거쳐 글을 쓰려고 하기 시작하면서, 글 쓰는 게 싫어졌습니다. 예전에 아무 것도 모를 때에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라는 말을 들었어도, 소설 쓰는 일 자체가 즐거웠는데 말이죠. 지금은 작업을 하기가 싫습니다.

 그런 거 다 던져버리고, 내가 내 맘 내키는 대로 쓴다면 적어도 마음의 평온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플롯을 짜서 글을 썼든, 아닌 상태로 글을 썼던 퇴고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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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 [취미/소설쓰기와 자작소설] - 시나리오 작법에서 배운 플롯구성. 소설과 크게 차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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