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고기요리 <쇠고기 깻잎 팽이버섯 말이>
의도치 않은 2020년 마지막 날의 특식?
제가 어릴 때에는 크리스마스나 연말을 따로 챙기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창 꿈에 부풀던 유청소년 시기는 무미건조하게 보냈는데, 이제 어른이 되니 여러모로 여유가 생겨서 말이죠. 크리스마스 이브 때나 12월 31일이면 뭔가 특별한 걸 해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올해는 마침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우연히 쇠고기 깻잎 팽이버섯 말이를 알게 돼서요. 마침 몇 년 전에 오빠네 식구들이랑 부모님이랑 거제도에 놀러갔을 때, 맛집이라면서 이렇게 채소를 고기로 동그랗게 말아서 구워먹는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던 것이 기억나서 언젠가 해 먹어봐야지, 생각하던 참입니다. 그리고 오늘. 신정을 앞두고 내일 먹을 떡국용 양지와 떡을 사러 외출해야 했기 때문에, 오늘 재료를 같이 사왔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딱히 먹을 반찬이 없음(......) + 고기를 오래 보관해서 좋을 것 없음 = 이왕이면 오늘 해 먹을 생각이었는데, 정작 식사를 담당하시는(응?) 어머니는 그렇질 않으셨는지 저녁 메뉴로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시킨 갈비탕이 나와버렸네요? 이왕 끓인 갈비탕을 안 먹을 순 없고, 또 그렇다고 재료를 사다놓은 쇠고기 말이도 먹어보고 싶고 해서 딱 맛만 볼 정도로만 말아봤습니다.
단촐한 생김새만큼이나 조리방법도 재료도 매우 간단합니다.
깻잎과 안에 넣을 채소 (제 경우에는 팽이버섯과 느타리 버섯)를 샤브샤브용이나 불고기용 쇠고기 위에 올려놓고 가볍게 말아주면 끝. 이 요리를 알게 된 계기인 meung님의 블로그에서는 깻잎을 반으로 접어서 윗 가장장리 둘레선을 깔끔하게 만드셨는데요. 저는 또 대략적인 조리방법만 확인하고 나오는 바람에, 형태는 신경쓰지 않고 그냥 돌돌돌 말아줬습니다. 덕분에 좀 먹음직스럽게 나오기는 한 것 같네요.
meung님은 구우면서 소금하고 후추도 뿌리셨다고 합니다만, 역시나 채소를 쇠고기에 말아서 굽는다, 라는 정보만 파악했던 저는 그런 것 없이 그냥 올리브유에 구워버렸습니다. 덕분에 맛이 매우 담백했다는 것. 삼삼했습니다. 고기 구워먹을 때 같이 먹는 참소스를 찍어먹으니 그냥 고기 구워먹을 때와 인상이 비슷해 졌습니다만, 맛은 고기를 구워먹을 때보다 가볍고 깔끔했습니다. 채소가 들어간 것도 있는 데다가, 고기도 얇은 샤브샤브용 고기를 사용했기 때문이겠죠. 그렇지만 고기 맛은 고기 맛대로 나면서 맛과 양도 너무 무겁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다음부터 고기 먹을 때에는 쇠고기 안심, 등심만 구워먹을 게 아니라, 일부는 이렇게 말이로 해서 구워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소스를 다양하게 준비하면, 여러가지 맛으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맛만 볼 양으로 몇 개 안 구웠기 때문에 재료가 많이 남았습니다. 남은 고기로 샤브샤브를 해먹지 않는 이상 조만간 다시 쇠고기 말이구이를 해 먹을 텐데, 그때에는 칠리소스랑 참기름장을 준비해 봐야겠습니다. 베이스는 같은 요리이지만, 아마도 맛이 상당히 다르게 나겠죠? 원래 참기름 소금장을 별로 안 좋아하는 저는, 그냥 칠리소스에만 열심히 찍어먹겠지만요. 헤헤. 소금과 후추는, 음. 왠지 안 뿌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재료와 조리
샤브샤브용 고기(일곱 점)
사 온 것은 호주산 청정육 500g입니다만, 몇 점 먹어보는 정도만 만들기 위해 일곱 점만 꺼내 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니, 확실히 하얀 마블링이 거의 없네요. 많이 먹을 생각에 가성비를 생각해 한우에 비해 저렴한 수입육을 집어들었습니다만, 마블링이 많은 한우를 썼다면 아무 간을 하지 않았더라도 좀 더 고소했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해 먹는다면, 차라리 양을 줄이더라도 한우로 사봐야겠습니다.
손도 많이 안 가고, 시간도 많이 안 걸리는 것이 본격적으로 각 잡고 굽지 않아도 밥 먹으면서 고기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럴 거라면 굳이 고기를 많이 살 필요도 없죠.
속재료.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량의 팽이버섯 한 봉, 느타리 버섯 한 웅큼, 깻잎 7장.
안에 들어가는 속재료가 팽이버섯이 메인이다 보니 팽이버섯이 많이 듭니다. 그런데, 마트에 가 보니 요즘 한겨울이라 그런가요. 팽이버섯도 날이 따뜻할 때처럼 미친 듯이 싸지는 않더군요. 그래봤자 비싼 것도 아니긴 했지만, 상대적인 가격변화가 느껴져서인지 팽이버섯을 많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처음 생각에는 부추도 같이 넣으려고 했습니다. 부추도 좋아해서 부추도 넣으려고 했는데, 이쪽도 한겨울 프리미엄이 붙었음. 가뜩이나 평소에는 한 단에 다른 채소들보다는 좀 비싼 편이네? 라는 생각이 들던 부추였는데, 오늘은 더더욱 비싸지셨더군요. 파처럼 어느 요리에나 거의 대부분 다 들어가는 재료가 아닌지라 한 단을 사놓으면 분명히 썪어나가는 부분이 생기는데, 그걸 표시된 가격을 주고 사기에는 은근히 돈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부추는 포기. 그리고 부추를 못 넣는다면 다른 속재료를 더 넣어보자, 라는 생각에 가격이 만만하게 저렴한 버섯 중에 느타리 버섯을 골라봤습니다. 그래서 느타리 버섯 추가.
깻잎은 예전에 외할머니 댁에서 뜯어온 깻잎이 생각나네요.
정말로 밭에서 자라던 걸 뜯어온 것이라 노지 깻잎이었는데요. 향이, 맛이, 이런 마트에서 나오는 것과는 천지차이입니다. 향이 진짜 강하고 맛있죠. 깻잎을 담은 봉투를 열기만 해도 그 냄새가 강하게 쏴아 올라왔는데. 그 외할머니댁 노지 깻잎을 사용했으면 과연 어떤 맛이 났을까 매우 궁금합니다. 지금도 맛있었지만, 아마 더 맛있어 졌겠지요.
둥글게 말기
이 요리를 처음 배운 블로그의 주인장께서는 깻잎을 반으로 접어서 윗 가장장리 둘레선을 깔끔하게 만드셨는데요. 저는 그냥 돌돌돌 말아줬습니다. 뭐, 팽이버섯이 깻잎에 완전히 가려지지만 않으면, 그냥 돌돌돌 말아줘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애초에 비주얼 자체가 팽이버섯이 약간 축 쳐지는 것 때문에 각 잡히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고기와 채소를 같이 먹다보니, 이걸 전골처럼 해먹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밀푀유라고 하던가요. 그것처럼 말이죠. 아니면, 그냥 육수에 채소 이것저것 때려놓고 샤브샤브를 해 먹던가요. 마침 배추도 좀 있겠다, 고기도 얇은 샤브샤브용 고기이다보니 해 먹으려던 음식 대신 다른 음식들 생각이 퐁퐁퐁 나네요.
<<<재료 살펴보기>>>
'랜선체험 > 먹거리 : 보고 만들고 먹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수잡곡밥. 이것으로 삼재를 막을 수 있을까? (0) | 2021.03.20 |
---|---|
종합 발포 비타민 베로카 - 위장이 약한 나한테도 좋다 (1) | 2021.01.21 |
허쉬초코바. 초콜릿 아이스크림 먹고 카페인 부작용을 겪다. (2) | 2021.01.06 |
벨샤멜 소스와 함께 하는 크로크무슈 (혹은 크로크마담) 만들기 (0) | 2020.11.19 |
삶은 닭가슴살과 새우와 오리엔탈 드레싱과 감식초와 꿀을 넣어 만든 샐러드 (0) | 2020.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