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필기구ㅇ문방구ㅇ글씨 이야기

저렴한 만년필로, 어렵지 않게 써 보는 일기 (다이소, 모나미, 플레피 만년필)

하프피프티 2023. 6. 13. 19:00

 저렴한 만년필로, 
 어렵지 않게 써 보는 일기
 (다이소, 모나미, 플레피 만년필)

 


 
◈ 일기, 어렵지 않아요~

 


 물리적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물론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심지어는 감성적인 면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것 같으면서도 시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 비유가 잘 산 시나, 노래의 가사는 정말 표현이 근사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운문보다는 산문 쪽을 좀 더 좋아하고 잘 쓰는 편이긴 한데, 그런 제가 정말 싫어하는 것이 딱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독서감상문(=독후감), 다른 하나는 일기입니다.

 
 뭐, 임마?
 독후감과 일기라면 산문의 입문이라고 할 수 있을 종류인데요. 그래도 저는 싫어하니다. 진짜루.
 그게 말이죠. 양쪽 모두 결론적으로 글을 쓰는 재미가 진짜 없었습니다. 


 독서감상문은 줄거리를 소개하고 감상이나 느낀 점을 써야 해. 
 일기는 그 날 있었던 특별한 얘기를 쓰는 거야. 


 제가 어릴 때에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배운 대로 글을 썼는데, 좋은 점수를 받은 적도 없고, 저 자신도 쓰면서 뭐랄까, 억지로 갖다붙이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는 그게 어떤 감각인지 표현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참 허접하다는 느낌이었죠.
 


 그러다 보니, 제 인생에 일기와 독서감상문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독서리뷰만큼은 별로 쓰고 싶지 않습니다. 전체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법 = 로그라인을 잘 쓸 수 있다면, 줄거리 소개를 깔끔하게 끝내고 느낀 점을 쓸 수 있을 텐데요. 로그라인 쓰는 법이 세상에서 젤루 어려워....
 


 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기는 그 날 있던 특별한 일을 쓰라는 거라고 배웠는데, 제 생의 3/4은 파란이 없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나날입니다. 그러다 보니 쓸 일이 없고, 쓸 거리가 없다보니 저절로 일기를 안 쓰게 되었다는 그런 거.
 


 그랬는데.
 최근에 한 문장 일기장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공부용 연습장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건데, 딱 한두 문장 정도만 적을 수 있는 작은 일기장이더군요. 목표 자체가 거창한 내용이 아니라, 그날 있던 일, 생각한 바 그런 것들을 가볍게 한 문장 적어보자, 라는 것 같았습니다.


 어, 한 문장이라고.
 그거 정도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하다못해 똑같은 일상을 보내더라도, 잠에서 깼을 때의 느낌은 날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을 테고, 밥을 먹을 때의 일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을 테니까요. 오전까지 자다가 점심 무렵에 일어나는 저는, 저희 집에서 식사시작시간이 가장 늦습니다. 그래서 꽤 빈번하게 밥 먹으려고 밥통 열었는데 밥이 없는 상황을 마주하곤 하지요. 확인하는 차원에서 밥통을 여는 선에서 정리되는 때도 있는가 하면, 반찬 다 준비했는데 밥통에 밥이 없다는 상황까지 다양합니다.


 그런 관계로,
 저도 일기란 것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밑도 끝도 없이 한 문장 적는 일로 시작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아무리 그래도 기승전결은 있어야 되지 않겠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6공 다이어리 크기의 저렴한 (속지를 갈아끼울 수 있는 타입의) 연습장에 일기를 써보고 있습니다.

 

◈ 만 원 이하 만년필

 


 2년 정도 전부터 글씨체 교정을 위해 필기구는 연필을 애용하고 있는데요. 일기는 예전에 사용하다가 넣어둔 저렴이 만년필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가진 연필들은 부드럽게 잘 써지라고 모두 진한 심으로만 사서 말입니다. 잘못 문대면 다 뭉개지고 더려워질 것 같아서, 수정하기 성가신 것을 감안하고 만년필을 꺼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비싸거나 좋은 건 아니고, 그냥 만년필 기능에 충실한 저렴이들입니다.
 일단 가격이 싸고! 
 고장 나면 AS에 끙끙거릴 것이 아니라 그냥 새로 사면 되고!
 잉크도 아무 거나 막 쓰면 되니까 유지관리 측면에서 아주 마음이 편합니다.



 요즘 일기 쓰는데 사용하는 만년필은 1. 다이소 만년필 2. 모나미 올리카 만년필 3. 플래티넘 플레피 만년필입니다. 다 같은 저렴한 라인들인데도, 사용감에는 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1. 다이소 만년필

 


 가장 기본적인 검은 색과 올리브 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펜촉은 하얀 녀석은 F, 펄녹색은 EF입니다.
 두 자루 모두 전반적인 형태가 라미 만년필과 닮았는데요. 처음 봤을 때 그 각진 그립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잡는 법이 잘못돼서 그런지, 예전부터 만년필을 잡으면 펜대와 펜촉바디의 경계 부분에 자꾸 손가락이 닿더군요. 그래서 그냥 글씨를 쓰고만 있어도 잉크 때문에 손가락이 더러워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 녀석들은 구조상 그렇게 될 수가 없어서 말이지요. 매우 기대가 컸습니다.

 


 사 두었다가 이번에 일기를 쓰면서 처음 개시를 한 녀석들인데.
 개인적으로 필기감은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애초에 좋은 필기감을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서 비교가 안 됨. 어쨌든 쓰는데 불편함은 별로 없었습니다.


 다만, 상술한 각진 그립부가 실제로 써 보니 완전히 생각대로는 아니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연필에 끼워쓰는 교정기는 연필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제가 원하는 바에 따라, 쥐는 방향이나 각도를 살짝 바꿀 수 있는데, 다이소 만년필은 그렇질 못합니다. 형태가 고정돼있다보니, 펜촉에 맞춰 그립부를 쥐면 펜을 쥔 손의 자세나 형태로 고정됩니다. 그게 연필과 미묘하게 달라서 이따금 좀 힘들더군요.



 게다가, 최근에는 잉크도 좀 가늘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검은색 잉크는 다이소 만년필의 카트리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녹색 잉크는 모나미 올리카의 잉크를 따로 채워줘서 사용하고 있는데요. 애초에 다른 회사의 잉크를 채워넣고 써서 그런가, 잉크가 좀 긁혀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아예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꺄웅.


 검은 색 잉크는 처음에는 잘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카트리지 중간에 공기방울이 차 잉크가 위아래로 갈라져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 나오던 잉크가 끊어졌었지요. 그 공기방울을 없애주니 다시 잉크가 나오기는 했는데, 문제는 그 뒤로 잉크의 두께가 좀 가늘어진 것 같다는 거. 우.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잉크가 배어나왔는데, 지금은 언제 잉크가 끊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좀 남아 있습니다.


 2. 모나미 올리카 만년필


 저렴이 만년필 2탄입니다. 국내브랜드 모나미 사에서 내놓은 제품인데, 이번에 일기를 쓰면서 알록달록한 잉크를 쓰기 위해 새로 구입했습니다. 마침 인터넷에서 천 원이라는! 무려 다이소 만년필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하고 있어서, 고민 없이 구입한 것은 여담입니다. 
 

 = 올리카


 현재, 가장 마음에 드는 상태(?)의 만년필입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잉크가 너무 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검은 잉크를 쓰면서 이렇게 물처럼 찰랑찰랑이는 건 본 적이 없었거든요. 마침 모나미의 잉크가 너무 묽어서 잉크가 많이 배어나온다는 사용기가 기억나더군요. 그래서 아, 이건 좀 망한 건가 (다른 잉크도 많이 시켰는데???).
 그렇게 생각했는데, 정작 써 보니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오는 것이 잉크가 묽어서 잉크가 많이 쏟아지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전 오히려 그 정도 양이 나와주는 것이 글씨가 또렷하게 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다이소 만년필들이 잉크가 나오긴 나오는데, 끊어지는 건 아닌데, 뭔가, 되다 만 느낌인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필기감은 그륵그륵 걸리는 감각은 좀 있습니다.
 이게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펜촉이 쓰면서 갈리고 닳으면 나아지는 것인지는 미묘~. 미천한 제 지식과 경험으로는 후자일 것 같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지금 상태라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악력이 약해서) 펜촉이 너무 부드러우면 글씨가 미끄러지는데, 적당히 긁히는 느낌이 있으면 그걸 방지해 주니까요.


 둥근 그립부가 살짝쿵 마음에 안 들기는 했으나, 쥐는데 불편함도 없고 여러모로 괜찮습니다.


 
 3. 플래티넘 플레피 만년필

 

 제가 가장 처음에 구입한 만년필입니다. 만년필이라는 필기구를 처음 써 보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벌써 10년 가까이 됐을 겁니다. 교보문고에 책 사러 갔다가 같이 딸려 있는 문구코너에서 발견하고 그 저렴한 가격에 눈이 번쩍 뜨여서 구입했더랬지요.

 

 = 플레피

 

 

 

 


 꽤 오랫동안 사용한 녀석이라, 처음 필기감은 기억이 안 납니....
 현재 시점으로 필기감은 역쉬 이 녀석이 젤루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이소 제품처럼 너무 부드럽지도 않고, 모나미처럼 대놓고 긁어대는 느낌도 없고. 적당히 사각거리는 느낌입니다. 


 다만, 그립부가 둥근 형태 + 플라스틱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형태라서요.
 제가 잘못 쥐어서 그런 것도 같기도 한데, 의외로 펜대와 펜촉 바디의 경계부분에 손가락이 닿더군요. 즉, 자꾸 펜촉 쪽으로 손가락이 미끄러져 내려온다는 거. 각진 형태의 다이소 만년필에 혹~ 했던 것도, 플레피 만년필을 쓰면서 느꼈던 불편함 때문입니다.


 이 문제점은, 제가 요즘에는 (연필을 쓰면서) 필기구 쥐는 법을 고쳐서인지 덜해졌습니다.
 현재는 모나미 153 네오 잉크카트리지, 하늘담은 호수 색을 담아서 쓰고 있습니다(물론 카트리지 규격이 다르기 때문에, 주사기로 뽑아내서 플레피 카트리지에 다시 담아줬습니다)..
 근디, 이쪽도 잉크가 좀 가늘게 나옵니다.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끊어지는 것도 아닌데.
 글씨를 쓰다보면 가끔 끊어질 듯 말 듯. 불안정합니다.

 


 그러고 보면, 플레피 만년필만 사용할 때 내내 다른 회사의 잉크를 채워넣어서 썼습니다.
 동네 대형 문구사에서 파커 병잉크를 팔아서 내내 그것을 사용했더랬지요. 다른 회사 잉크를 넣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 이번에는 왜 이리 잉크 나오는 것이 불안불안한지.
 오랫동안 안 쓰다가 새로 막 잉크를 채워넣고 써서 그런 것일까요. 
 쓰면서 나아지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아님, 새로 하나 사든가. 커피 한 잔보다 싸다능).

 


  
 최근에는 연필 쓰는 데에만 폭 빠져서 필통에 보관 중인 만년필을 볼 때마다 좀 아쉬웠는데요.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생겨서 좋군요. 덕분에 또 잉크를 사느라 돈 좀 썼지만요, 어차피 저렴이 라인이니까요. 이 정도면 싸게 끝나는 걸 겁니다. 

반응형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