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을 위한 연필깍지(펜슬홀더)
에 꽂혀 구매한 이야기 (1)
◈ 가격빼고 다 좋다는 스테들러 연필깍지
원래 문방구에 욕심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에는 공책을 그렇게 사서 모았고, 몇 년 전에는 만년필에 잠시 꽂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연필과 연필과 관련된 것에 제대로 꽂혀 있는 중.
지금까지는 연필 그 자체에 욕심을 부렸는데, 최근에는 연필깍지가 좀 필요해졌습니다. 연필을 많이 사용하는 직종도 아니고, 과연 연필을 써도 몽당연필이 될 날이 있을까 의심할 정도였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아이디어 정리할 때 슥삭슥삭 쓰고 깎고 쓰고 깎고 하다보니 흠. 짧아지긴 하더군요.
- 짧아지는 연필들
길이는 원래 길이의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
아주 짧은 것은 아닌데, 연필을 잡으면 묘하~게 불편합니다.
게다가 전 원래 오른손잡이이지만, 손목인대가 안 좋아서 글씨를 쓰거나 마우스를 다루는 일은 조금만 해도 손목이 뻐근해집니다. 그런 이유로 이 두 가지 작업 + 젓가락질은 왼손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결과물(?) 큰 문제는 없는데, 악력 자체는 아무리해도 오른손보다는 약해서 말입니다. 최적의 상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오른손보다 더 불편하게 느낍니다.
짧아진 연필도 오른손으로 잡으면 그럭저럭 버틸만한 수준이지만, 왼손은 연필이 헛도는 것 같아서 불편합니다. 뭐, 글씨는 주로 왼손으로 쓰니, 왼손의 감각에 맞춰주는 수밖에요. 그래서 짧아진 연필을 쓰기 편하게 해 주는 연필깍지를 알아봤습니다.
만!
연필깍지로 많이 언급되는 스테들러 사의 연필깍지는 선뜻 구매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1. 겨우 연필깍지에 몇 만 원이라는 가격을 들여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2. 다 마음에 든다. 가격만 빼고.
이런 말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즉, 스테들러의 연필깍지는, 좀, 비싸다.
게다가, 아마도 실제로 사용해 보면 감상이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형태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연필은 연필 특유의 밋밋함(?)과 길고 날씬함이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스테들러 사의 연필깍지는 인체공학적인 볼펜처럼 생겼습니다. 손가락으로 쥐는 그립 부분은 약간 도톰하고, 몸체는 살짝 얇아졌다가 끄트머리로 갈쑤록 다시 조금 도통해지는 형태. 덤으로, 분실방지 및 휴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종이나 그런 것에 끼울 수 있는 고리(?)가 있습니다. 그 고리가, 이 상품의 모든 점(심지어는 가격도 포함해서)에서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연필은, 날씨하고 길어야 한다고!
뭐, 그런 관계로.
그냥 시험삼아 질러보기에 좋도록 비교적 저렴하고, 또, 되도록 형태는 단순한 제품을 찾아보았습니다.
◈ 몽당연필홀더 알루미늄 익스텐더 그립 홀더 6개 세트
인터넷에서 방랑하다가 발견한 제품입니다.
뭣보다 알루미늄 연필깍지가 무려 하나에, 천 원이라는 가격이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저렴한 것도 좋았지만, 마음에 안 들거나 이래저래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방출해도 크게 뼈아프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랬기에, 사실 많이도 필요 없을 연필깎지를 세트로 6개를 구매한 것도 있습니다. 보라색과 분홍색이 왠지 마음에 들고, 어 파란색이랑 황색은 마스 100이랑 나무색 연필들을 끼워주면 될 것 같고, 그리고 또, 그리고 또…… 뭐, 대충 그런 이유입니다.
- 짧아진 연필과 연필홀더(들)
▶ 사용감
사용법은 쉽습니다.
그물모양의 그립을 돌려서 풀어주고는 그 끝에 연필을 꽂습니다. 그런 뒤 연필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그립을 다시 반대방향으로 꼭꼭~ 돌려주면 됩니다. 몸체의 끄트머리가 갈라져 있고 그 부분을 그립으로 꽉 눌러주는 형태라서, 홀더 자체보다 다소 두꺼운 연필들도 꽂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문해서 받은 것은 지난 주 금요일.
도착하자마자, 그리고 주말 동안에 몇 번 사용해 봤는데요, 사용감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일단, 무게가 가벼우면서 묵직하게 무게중심이 잘 잡히고(응?), 연필을 물어주는 힘도 괜찮습니다.
무게가 가벼우면서 묵직하다니 뭔 美친 소리냐고 할 것 같긴 한데 말입니다. 홀더의 재질은 얇은 알루미늄이라, 홀더 대부분을 차지하는 몸체는 가볍습니다. 홀더를 들었을 때 의외로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손가락으로 쥐는 그립부분 때문이지요. 연필을 꽉 물어주는 역할도 하는 이 부분이 그냥 쇳덩이로 돼 있는 것처럼 무거워서 가벼우면서도 묵직하다는 희한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그립부분은 홀더의 아랫쪽에 위치함 + 실제로 손에 걸쳐지는 부위는 가벼운 몸체 = 무게로 인한 불편함은 없습니다. 오히려 연필홀더가 너무 가벼우면 안정감이 없어서 환자, 아니 매우 많이 불편했는데요(종이를 말아서 만든 연필깍지를 쓰려다가 포기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종이 연필깍지는 길이는 보완을 해 주는데, 무게감이 없어서 안정감은 못 주더군요). 하단에 묵직한 무게가 있으니, 안정감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연필은 다 좋은데, 짧아지면서 그 절묘한 무게중심이 흐트러지는 것이 참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그립이 연필을 꼭 물고 있는 힘도 좋습니다.
이 부분의 힘이 약하면 연필을 꾸욱 눌렀을 때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리거나 수시로 빠집니다. 이 제품은 그립을 최대한 꼭꼭 돌려서 연필을 물리면 그런 일 없이 잘 버텨주더군요. 뭐, 물론, 그립을 대충 감으면 여지없이 안으로 쏙~ 해버리지만요.
연필에 달린 지우개가 제 손가락 뿌리에 와 닿기 시작할 무렵부터, 뒤로 넘어가면서 균형을 유지해주던 힘이 없어져서 되게되게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연필이 완전한 상태일 때만큼은 아니어도 (역시 연필 본연의 길이와 무게감이 딱 마음에 듭니다), 나름 쾌적하게 연필로 끄적거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단점
다만, 단점 아닌 단점이라면.
1. 그립을 오래 or 강하게 잡고 있다보면 손가락 피부가 아파옵니다.
그러고 보면 원래 글씨를 써왔던 오른손 검지의 첫번째 마디에도 요란하게 굳은살이 박혀 있었지요. 원래 그런 것이긴 할 텐데,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것. 그래서 연필을 좀 더 길게 빼주고, 홀더와 연필심 사이에 스폰지로 된 애벌레 홀더를 끼워줬습니다. 이러니 훨 낫네요(그런 만큼, 완전 몽당까지는 못 쓸지도 모르겠지만).
2. 홀더 길이가 좀 짧습니다.
홀더의 길이는 약 10cm 정도. 그리고 반대쪽 끄트머리는 막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홀더에 다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짧아진 연필만 들어갑니다. 아직 조금 길이가 남는 연필들은 일단 팍팍 길이를 줄여놓고 봐야 할 듯 합니다.
3. 팔로미노 블랙윙은 안 들어갈 각이다
아니, 이건 어느 연필깍지나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만, 이 연필깍지에는 팔로미노 블랙윙이 안 들어갈 것 같습니다. 지우개가 붙은 연필이라도 대부분 연필과 같은 폭으로 둥그런 형태의 지우개가 달려 있기 때문에, 홀더에 넣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르나, 팔로미노 블랙윙은 지우개가 넓적하고 크지요. 매우 개성넘치는 형태이기는 한데, 그 지우개(틀)이 있는 한 팔로미노 블랙윙은 아무 연필깍지에는 안 들어갈 듯 합니다. 아놔. 내 연필 중에 가장 비싼 게 블랙윙인데?
몽당연필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제 짧은 연필이 하나 생긴 시점에서 들여온 연필깍지가 6개.
이 중 5개가 지금은 일단 할 일 없이 놀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오늘 또 질렀다는 거!!! 며칠 전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한 건데, 웬걸. 파버카스텔 사의 카스텔 9000연필 전용홀더가 정말 엄청나게 예뻤습니다. 생김새는 밋밋한 원통형으로 일체의 장식이나 구조물이 없었고, 색깔이 파버카스텔의 녹색과 똑같았습니다. 매끈한 형태에 색깔마저도 진짜 파버카스텔 그 자체라서 "어머, 이건 사야 돼."라며 어느샌가 결제버튼을 누르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파버카스텔의 연필깍지처럼 간결한 원통형의 구조를 한 다른 홀더도 하나 더 사 주고.
내친 김에, 전에는 본 적이 없던 그런 연필이 있기에 그것도 두 자루 정도 주문해 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필기감이 좋다고 알려진 종이 + 완전 생긴 것이 내 취향이었던 연필도 새로 구매……. 연필의 새하얀 디자인이 스테들러 마스루모그라프와는 또 다른 의미로 마음에 콕 날아와 박혔습니다. 美쳤지. 근데, 종이 필기감이 엄청 좋다고 하니 손이 근질근질거리더라고요(지금까지는 얇고 부드러운 모닝글로리 중성지를 좋아했는데). 도착하면, 얼른 써 봐야지(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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