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오덕오덕

덕후를 알아보는 건 똑같은 덕후

하프피프티 2020. 9. 10. 20:42

  Fate 시리즈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요즘 일본 쪽 동인계를 들여다보면 자주 소재로 차용되는 Fate 그랜드 오더라든가 하는 그런 게임에 대해서도 전혀 모릅니다. 그냥 동인지가 워낙 많이 나오고, 내가 파는 동인작가들 중에도 Fate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트위터를 들여다보다가 그냥 그런 게임이 있다는 사실만 알게 된 것이죠.
 그래도 애니메이션 쪽으로는 덕덕스럽기 때문에 Fate
stay night와 Fate zero가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될 때에는 또 봤습니다. 특히  Fate zero는 이미 Fate stay night으로 그럭저럭 그 동네의 설정을 좀 알게 되었고, 작품의 호화스러운 성우진이 마음에 들어서(성덕이기도 합니다.) 리얼타임으로 본방을 사수했습니다. 심지어 1쿨이 끝나고 2쿨이 시작되기까지 약간 텀이 있었음에도 2쿨을 또 리얼타임으로 챙겨봤네요. (단, 원래 Fate 시리즈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새로 방영된 Fate stay night는 딱히 챙겨보지는 않았습니다).  
 거기에 덕질을 하면서 픽시브에서 상주를 하다보니(!), 의도치는 않았지만 Fate의 팬아트도 많이 보게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대체 마슈가 누구야? 하면서 또 대충 작품에 대해 찾아보고. 그러면서
비록 Fate 시리즈는 내용물은 아주 잘 알지 못해도, 약간, 아주 약간,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좀 아는 상태를 유지 중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만화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남주와 여주 모두가 게임을 매우매우 좋아해서 휴가지에도 노트북에 게임을 인스톨해서 가져가는 그런 패기 넘치는 인물들인데요. 그 두 사람이 게임을 플레이 하는 장면에서 아주 낯익은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덩치가 좋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호쾌한 중년남.
 가슴에 왕전략이라고 쓰인
꽉 끼는 티셔츠 착용.


 검은 바지정장을 걸친 젊은 여성.
 긴 금발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음.

 뭐지. 이 엄청나게 익숙한 느낌은. 
 이,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들은. 서, 설마!

대전략 티셔츠를 걸친 정복왕 이스칸다르.
기승 스킬을 가지신 기사왕

 얘네인 건가?!

 그러고 보면 실제로, 중년남은 처음 딱 봤을 때부터 이스칸달처럼 생겼네, 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관계가 없는 다른 만화였기 때문에 그냥 그런 식으로 캐릭터를 표현한 것이구나 했는데. 이런. 그 뒤에 나온 바지정장 차림의 여성의 컷을 보니 이젠 빼고박도 못하겠더군요. 이건 세이버다, 남장을 하고 다닐 때의 세이버다, 이건 Fate zero다, 라고.

 그걸 보니,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어머. 작가가 Fate zero의 인물들을 빌려다 썼나 보네. 이 덕후같으니라고.
 그리고 2초 뒤. 저는 그대로 침몰했습니다. 만화 한 컷에 차용된 그림을 보고 그 그림의 원전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맞춘 넌 뭐? 똑같이 덕후.

아아아

그래, 난 덕후였어

 제가 덕후인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고, 별로 감출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블로그에서 이런 소리를 싸지르고 있는데요.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 깨닫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덕후는 덕후가 알아보는 법

  왜 오덕에게는 이런 말이 있지요. 오덕을 알아보는 건 오덕이라고. 
  몇 년 전에, 결혼한 오빠가 조카와 집에 왔을 때, 검은 바탕에 하얀 실선으로 그림을 그려넣은 티셔츠를 입고 왔는데, 그 그림이 무려 원피스의 루피였습니다. 그걸 보고 전 뒤집어지게 웃으면서 오빠를 놀렸죠. 이 덕후가 그런 걸 어떻게 당당하게 입고 다니냐! 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빠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말하더군요. 모르는 사람은 그냥 다들 평범한 티셔츠라고 안다고 말이죠. 그러면서 오히려 당당하게 저한테 받아치는데.

 

 이게 원피스 티셔츠라는 걸 아는 건 그걸 아는 덕후뿐이다.

 

 크억. 그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파더군요. 그러나 저는 끝까지 발버둥을 치며, 그렇지 않다고 반론했으나. 실제로 덕후가 아닌 일반인인 새언니한테 물어보니까 그냥 티셔츠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확인사살 끝.
 

 덕후는 덕후가 알아본다. 그렇다면,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요소를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똑같이 며칠 전.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고도 위의 두 사건과 비슷한 반응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빠라밤밤밤 빠라빰밤바 빠라빰빰 빠~라


 그것은 <<쥬라기 공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 1편의 마지막, 모두가 헬기를 타고 섬에서 떠날 때 익룡과 함께 날아가면 흐르는 음악이었습니다. 방에 있다가 그 음악소리를 듣고 어, 쥬라기 공원이 하나~? 하고 이끌려 나왔죠. 하지만 실제로는 <<쥬라기 월드1>>편의 꼬마들, (아마도 공원의 팀과 렉스에 대비되는 아이들이겠죠), 클레어 조카들이 폐허가 된 구 쥬라기 공원의 관람객 센터에 도착한 장면이었습니다. 배경이 쥬라기 공원 시절의 무대로 돌아갔기 때문인지 배경음악으로 그 노래가 쓰인 모양입니다. 곡명은 Thema from Jurassci park.

 

조금 다른 쥬라기 공원



 영화 <<쥬라기 월드>>는 원래 작품 자체가 <<쥬라기 공원>> 3부작의 오마쥬라고 들은 것 같습니다. 유전자 공학에 손을 댔다가 망하는 1편과, 돈 욕심에 공룡들을 섬에서 데리고 나왔다 피보는 2편. 그래서 기존 <<쥬라기 공원>>과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내친 김에 <<월드>>에서 들어온 신규팬만이 아닌 <<공원>> 때의 기존 팬, 지금은 다 중장년이 돼 버린(……나도) 팬들을 위해 <<쥬라기 공원>>에서 사용했던 소품이나 노래 등을 차용을 많이 했다는 것 같더군요. 위에서 말한 예의 그 음악이 대표적일 겁니다.

 그런데, 이것도 제가 가칭 <가>라는 만화에서 Fate zero의 요소를 찾아낸 것과 같은 거 아닐, 까요? 결국은 아는 사람만 알고 반응한다는 것이니까요. 덕후를 알아보는 건 덕후라는 그런 거……. 아야야. 돌 던지지 마세요.

반응형
그리드형